_

이 작품은 영화 '왕의 남자' 원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왕의 남자'는 동성간의 사랑과 질투, 애정관계에만 중점을 둔,

마치 매끈하게 포장한 동인물같다는 느낌때문에 몹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사실 이준익 감독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굉장히 안맞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충분히 전면적으로 내세워질 수 있는 우인들의 놀이가 지닌 힘과

이를 중심으로 한 갈등관계가 부수적인 양념처럼 배치되거나 아예 실종된 것이

흥행에만 중점을 둔 무성의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영화였던지라...

 

하지만 연극 이(爾)에서 찾아낼 수 있는 테마는 이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연극 이를 관통하는 핵심적이고 주된, 결코 빼놓아서는 안될 테마는

'놀이'에 대한 관점과 신념들의 충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놀이, 그 존재의 이유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

 

_

연산: 문 닫고 놀자.

녹수: 춤추며 놀자.

연산: 담쌓고 놀자.

녹수:  잊고 놀자.

연산: 불끄고 놀자.

 

 

연산이 생모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감당안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이후

주색과 놀이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빠져들었고

술과 계집과 마찬가지로 놀이 역시 모든 걸 잊고

실없이 웃고 즐기고 흘려보내고 소비하는 일시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연산에게 있어 놀이는 견디기 힘든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잠시 취해서 잊게 만들어주는 일시적인 마취제와 다름아니죠.

 

 

_

장생: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보탬이 됐어.

몹쓸 것들 흉내내면 웃다가고 그 놈 잡아들여 혼줄 내고. 그래서 통쾌했고.

 

반면에 우인인 장생에게 있어 놀이는 흘려보내는 유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지탱해주는 힘이자 목적 그 자체입니다.

 

놀이가 가진 힘은 구구절절 설명되기보다 우인들이 펼치는 소학지희에서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놀이판에서 희화화되고 조롱당하지 못할 위인은 없죠.

웃음은 단순히 휘발되는 웃음도 있는 반면 우인들이 주는 웃음에는

사회의 가치를 순간적으로나마 전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무게와 부담에 못이겨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지 않는 말들조차

우인들은 웃음을 빌어 에둘러 세상에 토해놓을 수 있거든요.

 

건드리지 못할 것 같은 금기의 테두리를 툭툭 건드리며 세상을 굴려가는 것이

광대의, 놀이의, 예술의 쾌락이자 힘이였으며 존재의 이유인 것이죠.

 

 

 

_

장생: 얼빠진 놈! 왜 놀고 왜 웃겨? 억지 웃음을 짜내야 하고,

맘에도 없는 소리로 웃겨야 하고 살살 꼬리나 치며,

눈치나 보며 숨는 웃음. 그따위 웃음이니 지어야 하는 잡놈들의 짓거리야. 잘한다.

잘한다니까 잔나비 모양 팔짝팔짝 재주나 넘을 뿐이지

 

공길: 반드시 커다란 집을 마련할거다. 그리고 커다란 마당도 있어야 하겠지.

재주 있는 놈들 죄 모아다가 먹이고 입혀 내 아비나 어미처럼 냇가에 나가

울음 쏟아내며 버들피리나 불게 하지 않게 할거야.

더 이상 안 떠돌아도 되게. 더 이상 천하다는 소릴 듣지 않게. 주리지 않게. 곯지 않게.

그래서 맞아도 좋아. 개처럼 기어도 좋아. 뭐가 문제야?  (중략)

이게 뭔지 알아? 승명패! 이 걸 보이면 뭐든지 가질 수 있고 누구든지 부려.

오라면 와야되고 가라면 가야돼. 이게 뭐야? 힘이라는 거야. 내가 이제 그걸 가졌어.

장생: 누가 나를 부려, 누가 나를 막어? 내가 속에 심통머리가 들어 있어서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속이 아주 뒤집혀 버린다구.

아주 뒤집어엎고 난장 치고 싶어 미치는 놈이라고 내가.

 

 

그리고 이 놀이에 대한 상반된 두 가치관을 본격적으로 추돌시키는 것은 공길입니다.

  

이전까지의 공길은 장생과 여러 의미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동반자였지만

궁에 들어온 뒤 연산을 택하고 장생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오만석의 공길이 연산을 선택한 뒤 장생과 갈등을 빚는 장면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념을 공유하던 동지의 배신에 대한 분노,

변절의 정당성에 대한 항변이 매섭게 충돌합니다.

 

놀이 그 자체로 완전한 목적이 될 수 있느냐

아니면 변변찮은 생계의 수단일 뿐이냐,

 

놀이가 그 힘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속되지 않은 자유냐

굶주리지 않을 수 있도록 갖춰야 할 실질적인 돈과 권력이냐,

 

예술에 대한 근본주의자들과 시장주의와 결탁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도돌이표와 같은 논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싸움이기도 하죠?

 

 

_

특히나 이 장면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비록 광대와 놀이의 본분에 대해 주장하는 장생의 말에

냉정하게 되받아치며 그 허상을 지적했지만 

최소한 장생이 가져온 꽃의 향기를 느낄 줄 아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변절은 했을지언정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장생과 신념을 공유하는 동반자이기에

배신감과 체념에 떠나려는 장생을 막아서고 '자신을 죽이고 가라'며 협박을 하기도 하죠.

(물론 죽이겠다는 협박이 안먹히자 정 반대로 이 말을 꺼내는 공길이

얼마나 영리한 캐릭터인지 보여주기도 하는 대목이지만)

 

오만석의 공길은, 누차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혔다시피 정치적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단지 야망이 큰 공길, 이라는 뜻은 아니죠.

 

이미 마음으로는 장생의 신념을 여전히 이해할지언정

'전략적으로' 연산의 시각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오만석의 공길이 '정치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2. 수단이 된 놀이는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_

공길: 내일 경회루에서 한 판 놀 것이니 다들 준비해라. 이번에는 아주 벗고 놀자.

우인: 벗고 놀다니 그럼 알몸으로...

공길: 속곳바람으로 놀자. 기집처럼 분도 바르고 춤도 추고

우인: 뭣이라고라? 이거 우리 어머니 알면 넘어가시겠구만요.

공길: 뭘 못해? 니들이 무엇으로 먹고 입냐? 남 웃기는 일이지

 

 

극 초반에 펼쳐지는, '길들여지지않은' 우인들의 소학지희는

지금의 시대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풍자하며 권력을 해체하고 무력화시킵니다.

하지만 그 '권력'을 얻기 위해 공길은 연산에 '길들여졌고' 

이에 따라 일시적인 유희로 소비되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놀이'를 펼칩니다.

 

세상을 통쾌하고 꼬집고 비틀던 소학지희를 본뒤 우스꽝스러운 광대들의 여장쇼를 지켜볼 때

굳이 이념을 강요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 진정한 힘이 있는지 관객들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_

공길: 그래, 이 바보짓거리가 니가 말하던 얼이란 말이지? 그래,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야.

살려고 벨도 없이 살아왔지만 결국 아무 곳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구.

누가 했는지 뻔히 알면서도 끽 소리 못하는 벌레, 밟으면 찍소리 못하고 죽어야하는 벌레라구. 벌레.

 

 

공길도 여느 우인들과 마찬가지로 남을 '흉내'내는 데 좋은 솜씨를 보입니다.

우인들이 펼치는 판이 세상의 모사, 패러디를 중시한다는 점을 볼 때

형태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죠.

 

하지만 우인들의 놀이판과 달리 목적을 잃은 단순한 흉내와 모사는

웃음과 함께 그 힘도 휘발되어 버립니다.

 

녹수를 흉내낸 뒤 역으로 녹수에게 말려들어

연산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여러사람들 앞에

벌거벗어야 하는 수치심까지 감내해야 했고

 

오랜 시간 동반자까지 잃으면서 종 4품의 벼슬을 받고

권력이라는 실질적인 힘과 놀이꾼의 정체성을 맞바꾼 공길이지만 결과적으로

공길이 지긋지긋해하던 세상에 유린당하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들에겐 그저 가지고 놀 대상인 일개 광대에 불과했던 것이구요.

 

 

_

장생: 이건 아니야. 장 바닥에 나가 빌어먹어도

할 말은 하고 살자. 피죽을 먹어도 줏대는 있어야지.

 

공길의 말대로 떠돌아다니고 천한 취급을 받고 근근히 먹고살아야 하는 우인들의 생활이

현실적인 시선에서는 결코 어떤 힘이 있다고 간주하긴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롱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건 

한편으로는 방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죠.

 

소속되지 않음, 얽매이지 않음, 길들여지지 않음, 표현의 자유로움이 나올 수 있는 필수적인 배경이기에

이 때문에 이를 수단이 아닌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온 많은 예술가들과 보헤미안, 놀이꾼들이

역사 내내 가난하고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구요.

 

얽매이지 않은 시선은 항상 세상에 깨우쳐있게 만듭니다.

속박되지 않은 정체성은 움직임을 자유롭게 만들구요.

 

궁에서 벗어난 장생이 연산을 축출하려는 움직임에 망설임없이 가담해 행동할 수 있었던 것도

궁궐 담장 밖에서 벗어나 그렇게 계속 깨어있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었겠죠.

 

  

 

 

3. 놀이꾼의 본분

 

_

장생: 난 내 가슴이 벌렁거릴때만 살아있다고 느껴. 그래서 온거야.

내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살아서 웃고 떠들고, 치받고 얻어맞고,

싸고 갈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도 그걸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온 거라고.

 

 

스스로를 옭아맨 광대 공길이 패착에 빠져 버렸을 때 이를 구해준 건

권력이 있는 장군도 아니고, 왕도 아닌 장생이었습니다.

 

물론 장생은 눈이 뽑히고 연산의 칼부림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음이 장생과 그 신념의 실패를 뜻하는 것일까요?

 

눈까지 뽑힌 참혹한 상황에서까지 놀이판을 펼치게 된 건

놀이가 먹고 사는 수단에 불과한, 사람들에게 실없는 웃음이나 파는

대상으로서의 놀이었다면 절대로 가능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반대편의 논리를 강하게 사수해오던 공길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게 하고 어떤 것이 지켜야할 것이었는지

그 입을 통해 자백하게 만듭니다.

 

 

_

장생: 떠나. 비단옷 벗어 던지고 어서 여길 떠나. 니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그 사람들을 위해서 놀아 줘.

 

신랄하게 연산과 녹수를 조롱하는 공길의 마지막 놀이판은

단순히 장생을 죽인 것에 대한 분노로만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서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장생의 죽음을 통해 깨달았던 것이죠.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버리기 위해 놀이판을 펼쳤고

장생이 말하던,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쓸만한 놈'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고 자신의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기엔

이미 공길 스스로 너무 멀리 온 상황이었구요.

 

높이 든 칼로 연산이 아닌 자기를 베었던 건

우매하고 혼탁한 정신의 관객이었던 연산을 원망할 부분이 아니라

이를 선택하고 자초했던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 놀이는 계속 된다.

 

_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극 초반에 등장했던 벽사 의식이 치뤄지고

그 속에서 눈이 뽑힌 장생의 영혼이 춤을 춥니다.

구천을 떠도는 장생의 영혼이 아니라도 그 이후에 많은 놀이꾼들이

그리고 예술가들이 격변의 역사를 거치는 속에서도

놀이판을 계속 이어왔습니다.

 

이제는 직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라고 합디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렇습니까?

 

막장 논란을 빚고 있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에 국장까지 과일바구니를 싸들고가

너나 할것없이 포섭하지 못해 안달인 것과 대조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유명인들이 맡고 있던 프로그램을 없애고 내쫓아버리고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동혁이형'에 대해

방송국 사장께서 친히 지켜보겠다는 말을 꺼냈더군요.

현정권에 비판적인 코드를 종종 내비쳤던 무한도전은 최근 방통위로부터

출연자의 인격비하 운운하며  ‘쩌리짱’, ‘노찌롱’, ‘뚱보’ 등의 단어를 쓰지 못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간섭까지 받기도 했죠.

 

틈틈히 재갈을 물리려들며 놀이의 힘을 빼보려는 시도,

최소한 연산은 상실의 고통으로 정신이 뒤틀어져 자기파멸적인 유희에 빠져들었다고 칩시다.

지금 놀이판을 파멸적인 유희, 이빨빠진 호랑이와 같은 놀이판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는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깨어있을 수 있도록, 잠들어 얼어죽지 않게 툭툭 건드려주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장생같은 광대들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겁니다.

 

 

 

 

5. 배우 오만석의 귀환

 

_

오만석의 공길이 풀어가는 해석 속에서 초점이 맞춰질 인물은 장생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호영 공길은 이 작품에 대해 '사람에 대한 욕심'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고 하더군요.

사람에 대한 욕망을 중심으로 한 해석이라면 더욱 초점이 맞춰질 인물,

이 작품의 최종적인 주제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는 연산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에 대한 욕심과 욕망,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고

그 나름대로 충분히 가치있는 해석과 연기를 펼쳤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다만 이처럼 스스로의 정체성이 투영된 동시에 놀이판을 둘러싼

작금의 사회적 맥락과 맞아떨어지는 만석 공길의 해석은

오랫동안 이 작품에 몸담아왔던,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온

연륜있는 배우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_

사담을 풀자면 오만석이라는 배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배우들 중 한명입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연기 방식은 엄기준이나 김소현같은 배우들처럼

캐릭터의 감정선을 뚜렷하고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배우들이지만

이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오만석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사랑했던 건

이 배우만의 독특한 연기방식때문이었습니다.

 

매 순간마다 마음을 쥐었다 놨다 하는 연기 방식은 아니지만

조금씩 내리는 가랑비에 어느새 흠뻑 젖어버리는 것 처럼

과장되지 않은 연기를 관객 입장에서도 담담하게 지켜보다

마지막에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묵직한 것으로 얻어맞은 듯한,

 

끓는 물처럼 열기가 실시간으로 느껴진다기보다

평화로운 지표 아래를 흐르는 용암이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무대에서의 연기가 다른 어느 곳에서의 연기보다 더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했고,

고백하자면 그동안 티비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들을 보며

(어떤 것은 연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작품 자체가 형편없었죠)

마치 비단옷을 입은 공길을 보는 장생의 마음처럼,

 

괜한 배신감에, 안타까움에, 마음도 많이 멀어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특유의 연기방식이 잘 살아나기엔 공식적으로 찍어내기에 바쁜

티비 드라마라는 장르는 잘 맞지 않는 옷이라고 느꼈거든요.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왔던 '드림걸즈'조차 이전에 사랑해마지않았던

그 연기가 빛을 발하기엔 작품 속 캐릭터 자체가 매력이 떨어졌구요.

어찌보면 작품 자체상의 문제인 것을 그동안 이 배우에 가졌던 섭섭함까지 겹쳐

심한 원망과 질타의 소리를 쏟아냈던 것도 사실입니다.

더 이상 배우로서의 열정은 없어진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도 들었구요.

 

그런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변절이라도 한 것 같았던

이 배우가 이번에 다시 공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만석이라는 배우의 살아있는 열정도,

한 때 가슴 설렐 정도로 좋아했던 그 특유의 연기방식도 

다시금 제대로 느낄 수 있었구요.

 

 

대사를 한 줄 한 줄 읊을 때마다 공길에게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온 속내를

자조하기도 항변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토해내는 느낌이라,

 

공길의 모습에 그대로 오버랩되는 오만석이라는 배우의 모습에

그동안의 서운함과 충만해진 만족감이 교차되면서

감정적으로 정신없고, 마냥 반갑고 고맙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연극 속 공길은 너무 늦게 자신이 서있어야할 자리로 돌아왔지만

꼭 이번 무대를 통해

'난 내가 어울리는 옷이 어디인지, 서있을 곳이 어디인지 쯤은 잘 알고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마지막 인사에서 희미한 미소 대신 오랜만에 확신에 찬 그 특유의 큰 미소를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p.s.

_

비슷한 맥락으로 '우인'이라는 이 극단의 명칭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공연함으로써 가끔씩 흔들리는 자기정체성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_

극 자체의 '잘빠진' 완성도로만 따진다면 무조건적으로는 찬양할 작품은 아닌 듯 합니다.^^;

오히려 대사나 장면상 군더더기도 많고 다소 투박한 구석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이런 주제를 이렇게 쉬우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유치하지 않은 방식으로 엮어냈다는 점,

꾸준히 이어져온 전통을 지금에 와서 빛을 잃지 않게 윤색해온 작품이라는 점,

무엇보다 이를 연기하는 우인들의 충만한 진정성 덕분에 힘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_

대여섯번 정도를 글을 썼다 지웠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날 공연을 봤을 때 받은 감흥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네요. 지나치게 훌륭했던 공연과 부족한 글을 탓할 수 밖에요.

 

 

 

 _

참고로 이 전날 부산에 갔다가 돌아와서 서울역에서 곧장 예술의 전당으로 직행했던

무리한 일정이었는데요.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 과음을 한 탓에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공연 내내 같이 웃고 울면서 어느새 싹 통증이 가셨다는...

복국보다도 훨씬 숙취해소에 좋군요^^;

 

 

 

_

주변에 일부러 반응이라도 유도하는 듯한 몇몇 극성팬들의 과도한 효과음이나

대사 따라하기와 같은 비매너는 참 유감이더군요.

다른 사람이 느끼기도 전에 감정을 가로채였을 때의 짜증을 잘 알기에...

팬이라면 이 멋진 공연을 다른 사람도 더욱 잘 느끼도록 자중하는 게 맞지 않는가요 -_-;;

 


 

 

 


 

 

 

+) 막공 사진 (편파적인 사진매수 ㅈㅅ...)

 

 

이쪽 봐주셔서 고마워요 >.<

 

 

 

 


유콘스 뮤사이최쌤º 볼따구 내일은 푸른 하늘。 강남가라오케 다프의 사무실 고양이홀릭 라스트 나이트 위핏2010 내집마련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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